[김의기 칼럼] ”레미제라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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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기사입력 2014.10.15 18:36

▲ [김의기 칼럼] ”레미제라블”3     © 신민정

 [한국언론사협회]김의기의 인문학 칼럼

그 동안 2회에 걸쳐 동안 빅토르 위고의 대하소설 “레미제라블”이 어떤 작품인지를 소개해 왔다. 이 번이 제 3회인데 이것으로 레미제라블에 대한 소개를 완결하고자 한다. 마리우스는 기에노르망 백작의 손자였다. 기에노르망 백작은 사위가 나폴레옹 군대에 들어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사위와 의절하였고 마리우스와 접촉도 못하게 했다. 역사책을 통해서 아버지가 프랑스의 영웅이라는 것을 안 마리우스는 집을 떠난다.

 

가난을 이기며 법대를 졸업 변호사가 된다. 마리우스가 20세가 되던 해 파리는 혁명적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1830년, 1832년의 혁명이 그것이다. “혁명의 열기는 서서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파리 전체가 아니 전 프랑스가 열기에 휩싸였다. 비밀결사가 인체의 암처럼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사회문제보다 꼬제트와의 사랑에 빠져 있었다. 고전을 읽으면 좋은 점의 하나는 책에서 순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욕망이 무한대로 분출하고 그 욕망의 만족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지만 19세기는 도덕적으로 엄격하고 사람들이 순진하던 시절이었다.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순수한 사랑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마리우스는 파리의 룩셈부르그 공원에서 장발장과 함께 산책을 하던 꼬제트를 만난다. 룩셈부르그 공원은 파리의 리옹역 주변에 있는 거대한 공원이다. 다이어너 여신의 조각으로도 유명한 이 공원은 수많은 파리지앙의 사랑을 받은 곳이다.

 

파리에 간 루소도 이 공원에서 자주 산책을 하곤 했다고 그의 고백록에 기록하고 있다. 마리우스는 꼬제트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겨 매일 꼬제트를 보려고 산책로에 앉아 안타깝게 그녀를 바라보고 그녀의 뒤를 따라 다닌다. 꼬제트도 아름다운 청년에게 마음을 설레며 말없는 눈빛으로 응답할 뿐이다. 이렇게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믿기 힘들지만 사실 사람의 외모는 상당부분 내면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사람의 표정은 그의 내면세계를 꽤 분명하게 표현한다.

 

첫눈에 반했다고 해서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장발장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리우는 마침내 장발장의 집을 찾아내고 정원에서 꼬제트를 만나게 된다. 마리우스를 보고 꼬제트는 너무 기쁘고 놀라 그의 품안에서 기절 한다. 그리고 황홀한 첫 키스, 하지만 첫 키스는 안타까운 마지막 키스가 되고 서로 손을 잡고 손에 키스하는 것 이외에 육체적 접촉은 없게 된다. 파리는 시민 봉기로 내전 상태로 들어간다. 마리우스는 친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바리케이드로 간다. 이때 마리우스가 꼬제트에게 보낸 편지로 인해 장발장은 꼬제트에게 연인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생긴 것이다.

 

꼬제트는 장 발장의 행복의 모든 원천이었는데 꼬제트가 자기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장발장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런데 장은 그 편지를 보고 마리우스가 바리케이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었다. 바리케이드가 가장 위험한 장소였던 것이다. 마리우스가 죽으면 그 둘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끝나고 장발장의 행복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편지를 보자마자 장발장은 바리케이드로 간다.

 

바리케이드에서 장발장은 놀랍게도 자베르를 만났다. 스파이로 시민군에 잠입해 있던 자베르가 신분이 탄로나 시민군들에 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민군 지도자는 자베르를 처형하라고 지시한다. 장발장은 자기가 자베르를 처형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자베르는 자기의 최후가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동안 얼마나 착한 장 발장을 괴롭혔던가? 그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혀 믿지 않았다. 장발장은 자베르를 데리고 조용한 데로 갔다. 그리고 그를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자유다, 가라'고 말한다.

 

자기를 살려준다는 말에 자베르는 할 말을 잊고 멍하게 그를 쳐다 보았다. “자베르는 시장 쪽으로 걸어 갔다. 몇 발작을 걸어가다가 자베르는 몸을 돌려 말했다. '이것 정말 당황스럽군요. 당신이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베르가 사라지자 장 발장은 공포를 한방 쏘았다.”

진압군이 밀어닥치자 봉기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리우스도 큰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업고 근처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땅을 살폈다. 마침내 맨홀을 찾아냈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맨홀 뚜껑을 열고 파리의 하수도로 들어섰다. 파리의 하수구는 주요 도로를 따라 지하에 건설된 대 건축물이다.

 

지하세계에 이런 거대한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관광명소가 되어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해 놓았지만 컴컴한 파리의 커다란 하수구는 위험한 곳이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하며 장발장은 마리우스를 업고 필사의 탈주를 감행한다. 마침내 하수구를 벗어났을 때 경찰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수구를 통해 봉기꾼들이 탈출을 할 줄 알고 경찰이 요소 요소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경찰은 바로 자베르였다. 장발장은 자베르에게 죽어가고 있는 마리우스를 집에 데려다 주어야 한다고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한다. 자베르는 이를 허락한다.

 

마리우스를 데리다 준 장발장이 다시 꼬제트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달라고 하자 자베르는 이도 허락한다. 장발장이 도로 집밖에 나왔을 때 자베르는 사라지고 없었다.

자베르는 경찰로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인간이 사랑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정영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경찰로서의 의무인 마지막 정보 보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장발장은 마리우스와 꼬제트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이제 장 발장이 해야 할 일은 꼬제트가 자기를 잊고 두 부부가 잘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는 꼬제트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서서히 정을 떼려고 했다. 그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것이 꼬제트를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마리우스에게 자신이 전과자였으며 자기가 살아온 어두운 과거를 모두 밝힌다. 마리우스도 장발장이 자기를 살린 사람이란 것을 모른 채 어두운 과거를 가진 장발장을 떠나 보내려 한다. 마지막 대단원은 테나르디에르가 만든다. 그는 마리우스를 만나 마리우스가 부상당한 그 날 장발장이 파리의 하수구에서 어떤 청년의 시체를 버리려고 했다고 말한다. 이로써 바리케이트 자기를 구한 사람이 바로 장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꼬제트와 마리우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장 발장이 임종을 맞이 하는 것으로 이 대하 소설은 끝이 난다. “빛이 보인다. 가까이 와 다오. 나는 행복하게 죽는다.

 

내가 손을 얹을 수 있도록 너희들의 머리를 숙여다오.”

하지만 우리는 테나르디에르의 딸 에포니가 마리우스에 보낸 애틋한 애틋한 사랑의 얘기를 잊으면 안된다. 그녀는 거리의 부랑아 출신이었지만 마리우스를 위해 꼬제트의 소재를 알려주고 자기 아버지로부터 장 발장을 보호한다. 그녀의 사랑은 지순하다. 그녀는 짝사랑이었지만 사랑하는 마리우스의 품에 안겨 최후를 마친다. 누구의 사랑이건 지순한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위고의 섬세한 마음은 부랑아 에포니가 마리우스를 사랑하도록, 그 사랑이 아름답게 끝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영문으로1,232쪽의 대작이며, 철학, 사상, 정치, 전쟁, 사회 문제, 전쟁, 혁명, 사랑과 배반, 인간의 모든 삶이 간직된 위대한 작품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 평이하게 쓰여져 있지만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의 지식이 1000배쯤 증가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위고는 1802년 프랑스 동부 돕지방의 수도인 베장송에서 태어났다. 위고의 아버지는 나폴레옹 군대의 장군이었다. 위고는 7세에 로마의 고대 역사가였던 타시투스를 읽었다고 알려져 있는 신동이었다. 그는 시인으로 비평가로 일찍부터 유명해졌다.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의 중심에 있는 그의 문장은 격렬하고 주인공들의 감정은 여과없이 표출된다. 그는 1837년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845년에는 상원의 종신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루이 나폴레옹의 제 2공화국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프랑스를 떠난다. ‘레 미제라블’은 그가 60세가 된 1862년 출간되었다. 원숙미가 돋보이는 걸작중의 걸작이다. 이 책은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벨기에의 수도 브라셀에 가면 구도시의 중심 광장을 그랑플라스라고 부른다. 그랑플라스는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시청건물과 고색창연한 중세 시대의 길드 건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길드 건물 중 한 건물은 지금 카페가 되었다. 그 집에 현판이 붙어 있는데 ‘빅토르 위고’가 1851년 이집에서 살았다’ 고 쓰여져 있다. 위고는 브랏셀에 살며 워털루 전투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실제 전투가 진행된 지형을 관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랑플라스는 자동차가 진입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완전히 사람들을 위한 광장이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30분 경마다 물결이 밀려오듯 이 광장에 와서 경탄에 찬 표정으로 정신을 잃은 듯 시청 건물의 첨탑을 바라보는 광경은 흥미롭기도 하다. 이 위고의 카페에서 벨기에 맥주를 마시며 ‘제 미제라블’을 읽어 보라. 책의 상당한 지면은 이 전투와 이 전투가 갖는 의미에 대해 할당되고 있다.

 

10만명의 영국, 네델란드, 독일의 연합군들은 브라셀의 파괴를 막기 위해 브라셀 남쪽인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폴레옹은 5만의 군대를 이끌고 파리에서 올라와 워털루 평원에서 일전을 겨룬 것이다. 이것은 처참한 전투였다. 지금도 워털루는 기념비를 세워 다시는 이런 처참한 전쟁을 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다. 물론 인간은 망각의 존재, 처참한 전쟁은 이 이후에도 이어졌다.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잡힌다. 워털루 전투를 가장 잘 묘사한 책이 ‘레미제블’이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은 ‘전쟁과 평화’다. 대 사건은 대 문학을낳는다.

 

일조량이 부족한 벨기에는 포도주는 생산할 수가 없다. 하지만 마을 마다, 수도원마다 고유한 맥주를 빚었다. 물로 맥주를 만들어 물 대신 마시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벨기에 맥주는 7-9도 정도로 알코올 도수가 다소 높다. 폭탄주 도수가 이정도가 아닐까? 벨기에 맥주는 종류가 300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 카페에서는 한 20가지 정도의 맥주를 판다. 맥주를 시키면 맥주마다 고유한 잔이 있어 그 잔에는 해당 맥주의 이름이 씌여 있다. 코카콜라 잔에 맥주를 마시거나 다른 잔으로 맥주를 마시는 일은 없다. 위고의 카페에서 잔이 플라스코 같이 생긴 맥주 ‘콱’을 마셔보라. 그대는 쉽게 낭만파가 될 것이다.

 

그대 앞에는 꼬제뜨의 아름다운 얼굴과 마리우스의 늠름한 모습, 도도한 역사 앞에 우뚝 선 나폴레옹,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영원한 미소를 지으며, ‘저기에 빛이 보인다’고 말하는 장발장의 모습이 떠 오를 것이다. 위고는 1885년 파리에서 죽었다. 거인 위고는 괴테이래 유럽의 최대 지성이었다. 위고 이후 유럽문화의 주도권은 러시아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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