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름 바다와 살인

김의기의 인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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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 기자
기사입력 2014.08.15 14:43

▲ 김의기의 인문학 칼럼     © 박희성

[한국언론사협회=선데이뉴스]‘여름에는 사려 깊지 않은 사랑과 충동적인 범죄가 많이 생긴다,’ 스콧 피츠제랄드의 말이다. 무더운 여름 밤의 음습한 유혹, 후끈한 밤의 열기, 끈적이는 땀에 젖은 피부, 충동적인 사랑, 우발적인 범죄를 이 보다 간명하게 표현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피츠제랄드가 아니면 감히 만들 수 없는 명문장이라고 생각된다.


 영문으로는 Imprudent love and Impulsive crime이다. 운율이 있는 단어를 배치해 부드럽게 발음할 수 있다. 다른 작가가 쓴다면 ‘충동적인 사랑과 사려 깊지 않은 범죄’라고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너무 진부한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가 ‘사려 깊지 않은 사랑과 충동적인 범죄’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책을 읽어 가다 그 앞에서 멈추고 그 문장의 의미를 생각하고 음미하게 된다. 과연 대가다운 테크닉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는 바다를 좋아한다. 그의 단편 '조용한 사람'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죽음같이 추운 겨울날이었지만 눈부신 해는 벌써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도시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선착장의 끝에 바다와 하늘이 섞여서 어지럽도록 매혹적인 하나의 빛으로 녹아 있었다.” 그의 다음 문장은 여름 바다 젊은이의 삶을 짧고 칼날같이 날카롭게 묘사한다.
“깊고 깨끗한 바닷물, 뜨거운 태양, 여자들, 육체적인 삶, 그와 같은 것들은 젊음이 흘러감에 따라 사라졌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은 주인공인 메르소가 여름 바닷가에서 아무 이유 없이, 다만 햇볕이 뜨겁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유명한 작품이다. 이유 없는 살인이다. 제임스 딘이 주연한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이 전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소설 ‘이방인’을 읽어 보면 메르소가 아랍인을 죽인 이유는 잘 설명되어 있다. 해변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총을 쏜 것이 아니다. 그 아랍인은 이미 그의 친구에게 칼을 휘두른 일이 있는 깡패이었고, 사람이 없는 바닷가에서 메르소를 만나자 칼을 빼 들었다. 그 깡패에게 총을 쏜 것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이었다.


 법정에서 이것을 잘 설명했다면 그는 알제리에 사는 프랑스 백인이었으며 좋은 직장을 가지고 있었고 아무런 전과도 없었으므로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알제리 바닷가의 태양열은 머리가 깨질 정도로 뜨거웠고 땀이 흘러 시야가 가려지긴 했지만, 또한 이로 인해 그가 총의 방아쇠를 당길 때 살인을 하지 않고도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흐려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정황으로 볼 때 정당방위로 인정 받을 가능성이 훨씬 큰 것이었다. 작품을 잘 읽어 보면 메르소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은 담당 검사의 편집광적인 종교심 때문이었다. 카뮈가 편집광적인 종교인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음은 작품 속에 잘 들어나고 있다.

그럼 왜 '이유 없이 햇볕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알려졌을까? 그가 총을 쏘는 장면이 충격적이었고, 작가 자신이 독자들에게 총격 원인을 명백히 설명하지 않고 애매한 상태로 총격 장면만 상세히 묘사한 것도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소의 친구가 뚜쟁이였다는 것, 메르소가 이 친구에게 열린 태도를 보인 것도 메르소가 온전한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본인이 법정진술을 할 때 횡설수설 하다가 '햇볕 때문이었다'고 한 진술한 것도 그런 해석을 가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해석이 시대 정신에 맞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시대정신이 그 장면을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은 시대, 불만이 폭발 직전인 시대, 거리를 메우고 변화를 요구하는 젊은이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방인'을 이유 없는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이라고 해석하면 이 작품이 이상하고 무거운 소설이라는 인상을 주게 되는 게 안타깝다. ‘이방인’은 아주 가볍고 쉬운 소설이다. 특히 연애 장면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카뮈의 문장은 쉽고 부드럽다.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유연한 소설의 흐름은 어떤 소설보다도 독자를 매혹시킨다. 내가 불어 공부를 할 때 가장 먼저 읽은 책이 ‘이방인’이었다. 불어선생이 제일 읽기 쉬운 책이라고 그 책을 권했던 것이다. 그의 연애도 문장처럼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여자를 얻고 그녀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 감옥에 갇혀 마리와 만나는 장면도 애절하다. 마리와의 연애 장면은 산뜻하고 달콤하다. 그는 마리를 수영장에서 만났다.

“수영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 마리 카르도나가 있었다. 마리는 같은 사무실의 타이피스트였는데, 나는 그녀를 좋아했었고, 그녀도 나를 좋아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우리와 같이 있던 시간이 너무 짧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에 그녀가 떠났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뗏목에 올라오도록 도와주었다. 자연스런 실수인 것처럼 내 손이 그녀의 젖가슴을 만졌다. 그녀는 뗏목에서 몸을 쭉 펴고 누웠다. 잠시 후 그녀가 몸을 돌려 나를 쳐다 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웃는 것이 보였다. 나도 뗏목에 올라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공기는 따뜻하고 즐거운 기분이었다. 장난치는 것처럼 내 머리를 그녀의 허벅지에 놓았다. 그녀가 괘의치 않는 것을 보고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내 눈에는 푸른 황금색 하늘이 가득 들어왔다. 마리의 배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뗏목에 30분 가량 누워 잠깐 잠이 들었다. 해가 너무 뜨거워지자 그녀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물속에서 팔로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다. 우리는 나란히 수영을 했다. 그녀는 아직 웃고 있었다. 풀장의 바깥에서 몸을 말리고 있을 때 그녀는 '내가 더 갈색으로 탔어,' 라고 말했다. 저녁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말했을 때 그녀는 다시 웃었다. 그녀는 좋다고 했다… 영화는 코믹했지만 바보 같은 영화였다. 그녀는 다리를 나에게 꼭 붙였고 나는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영화가 끝날 즈음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영화가 끝나자 우리는 내 아파트로 같이 왔다. 아침에 깨어났을 때 마리는 가고 없었다.”
이제 메르소가 왜 죽었는지 좀더 알아보자. 그가 체포되었을 때 담당 검사는 그가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답변한다.

“그 검사는 자기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아무리 나쁜 죄인도 하느님으로부터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죄인은 먼저 회개를 해야 하고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신뢰하는 마음, 믿음을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그 검사는 십자가를 내 눈에 들이대고 몸을 일으켜 탁자 위로 나에게 바짝 얼굴을 대고는 열정적인 목소리 내가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내가 '아니요' 하자 그는 화가 잔뜩 나서 자기 의자로 몸을 던졌다. '믿을 수 없어;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믿고 있어…내 검사 생활 중 너같이 마음이 굳은 놈은 본일이 없어. 지금 까지 나에게 온 범죄자들은 내가 주님의 상징을 보여주면 모두 눈물을 흘렸어.'”
그 검사는 메르소가 영혼이 없는 존재이며 이런 비인간성 때문에 무자비한 살인을 했다고 기소한다. 메르소가 비인간성을 증명하기 위해 위해 그의 모든 사생활이 파헤쳐 지고, 그가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 그가 장례식이 있은 다음날 여자를 만났다는 것까지 그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증거로 채택된다.


법정은 단편적인 증언을 엮어 모아 허구를 사실처럼 만든다. 노련한 검사는 인간 메르소를 악마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메르소는 법정 증언에서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법정 안은 너무 더웠고 그는 지쳐 있었다. 너무 말을 빨리 하였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했고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다. 결국 법정은 그의 유죄를 인정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이다.

감옥에 면회를 온 마리를 메르소는 마구 껴안고 싶어한다. 하지만 철망이 막혀 손이 닿지 않는다.
“마리는 있는 힘을 다해 환히 웃었다. 나의 눈길은 그녀의 어깨로 가 닿았고, 얇은 옷을 통해 들어난 그 어깨를 꽉 안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실크 섬유의 감촉이 나를 황홀하게 했다.”
여름이다. 여름 바다에서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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