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교주의 죽음 막장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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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 기자
기사입력 2014.08.08 00:44


 [한국언론사협회=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몇 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하실에 백백교 교주 전용해의 머리 표본이 알코올에 담겨 보관돼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일제강점기 동학의 일파인 백백교는 1930년대 남년 신도 450명을 살해한 희대의 사이비 종교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백백교 교주의 머리는 일제 경찰이 ‘범죄형 두뇌표본’으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용화교는 미륵불을 내세운 증산교의 일파로 1931년 서백일이 창시한 종교다. 교리를 빙자해 금품을 갈취하고, 여신도들과의 추문으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서백일은 1966년 신도의 칼에 맞아 죽었다. 근현대 한국에 등장한 자칭 ‘재림주’와 ‘하나님’은 120명이 넘는다고 한다. 오대양 사건, 다이선교회 휴가 소동, 영생교 살인 사건, 마가동산 암매장 사건, 천존회사건, JMS사건 등 이들이 일으킨 사건은 수없이 많다. 우리나라 신흥종교들은 샤머니즘의 입신체험, 정감독의 정도령 사상이 기독교의 메시아와 융합하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한국 신흥종교의 양대산맥인 전도관의 박태선과 통일교의 문선명이 대표적이다. 그 후 등장한 신흥종교 교주들 역시 메시아를 자처한다.
영생교의 조희성은 전도관 출신이다. 수감 중인 JMS 정명석은 통일교회에서 활동하다가 독립했다. 전도관의 하나님이었던 박태선은 1990년 사망했다. 통일교의 ‘참무모’인 문선명은 2012년 사망했다. 정도령을 자처한 조희성은 2004년 구치소 수감 중 심장마비로 숨졌다. 전도관과 영생교 신도들은 자신들의 교주가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철석같이 믿고 기다렸다. 결국 경찰이 나서서 강제로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일부 신도들은 지금껏 교주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구원파는 ‘한번 믿으면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요 교리다. 그런데 ‘일단 구원을 받으면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괜찮다’는 식의 극단적인 가르침이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사고로 이어졌다.
 
유병언은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 씨는 세월호 참사 나흘 뒤인 4월 20일 출국금지가 내려진 때부터 도피생활을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5월 25일 전남 순천에서다. 그 후 감감무소식이어서 망명설 등 추측이 분분했으나 6월 12일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변사체가 유 씨였음이 40일 만에 확인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 유 씨를 지목하고 모든 수사의 초첨을 맞췄던 검찰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유 씨의 시신이 발견된 곳은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불과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유 씨는 그가 실소유주인 모든 계열사의 횡령, 배임 탈세, 해외 재산 도피, 부동산 실명제거래법 위반, 계열사 불법 지원, 뇌물 공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의 중심에 서 있었다. 검찰은 핵심 피의자가 사망함으로써 현재 기소된 유 씨의 가족과 측근들의 혐의를 유 씨 없이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세월호 구조에 정부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비용으로 지불했다. 구상권 행사를 위한 유 씨 일가의 재산 환수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유 씨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의 각종 의혹과 불법은 비호 세력의 도움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문제를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 씨가 세모그룹 부도 이후 오랜 세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같은 거대한 ‘지하왕국’을 구축한 것을 보면 정관계 배후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유 씨가 살아서 체포됐다면 그를 도왔던 정관계 비호세력은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유족의 마음은 찢어지는데 어디에선가 유 씨의 사망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유씨의 죽음이 진실을 미궁 속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유 씨 왕국의 조력자들을 규명하라.
  
▲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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