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이 사랑에 빠진다면

김의기의 인문학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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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성 기자
기사입력 2014.07.20 12:48

[김의기 칼럼]김의기/인문학 연구자
▲ 김의기/인문학 연구자     ©박희성

 문학이 가장 즐겨 다루는 주제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걸/사랑 받는 그 순간보다 흐뭇한 건 없을 걸…/사랑의 눈길보다 정다운 건 없을 걸/ 스쳐 닿는 그 손 끝보다 짜릿한 건 없을 걸...’’ 하는 김세환의 노래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표현하고 있어 40여년간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물론 사랑은 그냥 이렇게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흐뭇한 사랑의 얘기 뒤에는 이루어 지지 못한 애달픈 사랑의 아픔이 있다. 문학사상 가장 거대한 스케일의 사랑 얘기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생각된다. 주인공은 귀족이자 부자이고 미남이며 장교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인 브론스키, 그는 모스크바의 사교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였지만 기혼녀인 안나를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다. 브론스키가 안나를 거리에서 만나는 장면이다.
 
 “브론스키는 마차를 타려다가 어느 부인을 지나가게 하기 위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길을 막아서 죄송하다고 용서를 청하고 막 마차를 타려다가 그 부인을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어떤 힘이 그를 강제로 그를 쳐다보게 하는 것 같았다. 그 여자가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온 몸이 우아하고 품위가 넘쳐 흘렀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달콤한 얼굴에서 무엇인가 특별한 부드러움과 친절함을 보았던 것이다. 그녀의 빛나는 회색 눈은 검은 속 눈섭 때문에 다소 어둡게 보였다. 그 눈이 잠시 브론스키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녀는 지나가는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생명의 생동감이 가득했다. 그리고 거의 보이지 않는 미소가 그녀의 핑크 빛 입술에 맴돌았다. 그것은 그녀의 온몸을 채우고 있는 활력이 그녀의 의지를 넘어 밖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톨스토이는 안나의 외면을 묘사하며 안나의 내면까지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온 몸을 채우고 있는 활력, 그것이 그녀의 매력 포인터였다. 안나를 파티에서 만난 브론스키는 안나의 매력앞에 무너져갔다. 무너져 가는 브론스키의 모습은 키티의 눈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키티는 브론스키를 사랑하는 순진한 처녀였다. 안나를 만나기 전에는 브론스키도 키티를 사랑했다. 그런데 이 남자를 이름도 모르는 유부녀에게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톨스토이는 누구도 아닌 키티가 화자 (話者)가 되어 이 장면을 진술하게 한다. 잔인한 수법이 아닐 수 없다. 키티는 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키티는 안나가 브론스키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키티는 안나가 승리의 환희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남자들에게 존경심을 일으킨다는 것에 그녀는 사뭇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그녀의 눈은 가늘게 떨며 섬광처럼 번쩍이고 있었다. 행복한 미소가 그녀의 입술에 무의식적으로 장난을 치는 듯 감돌았다….키티는 브론스키를 보았다. 공포가 몰려왔다. 안나의 얼굴에 나타난 그 표정이 브론스키에게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안나에게 모든 것을 바친 노예 같았다. 키티의 영혼은 안개에 덥힌 것 같았고 모든 것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안나는 자기가 살고 있는 생 페테스버그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탄다. 안나는 몇 일전의 파티와 그 때 만난 브론스키 생각으로 마음이 몹시 심란했다. 기차가 어느 역에 도착했을 때 안나는 바람을 쐬기 위해 기차 밖으로 나왔다. 안나의 마음처럼 역 플랫폼은 눈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느 남자가 흔들리는 램프 불빛을 뒤로 받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왔다. 그녀는 뒤를 돌아 보았다. 브론스키가 서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얼굴은 전날 파티에서 존경심과 황홀한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안나는 그 이후에 몇 번이나 그 남자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를 다시 보자마자 기쁨과 자부심에 휩싸였다. "당신이 가는 곳으로 저도 가고 있습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군요." 그 순간 바람이 기차 지붕의 눈을 흩날렸다. 판때기 같은 얇은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슬픔에 잠긴 듯 절망한 듯 기차 엔진이 깊은 기적소리를 냈다. 그가 한 말은 그녀의 마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었고 그녀의 이성이 두려워하는 말이었다.”
 
 왜 무라까미 하루키가 초코렛을 먹으며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것은 캄캄한 우주를 들여다 보는 것과 같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하필 그때 바람이 기차 지붕의 눈을 흩날렸는지, 왜 판때기 같은 얇은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는지, 왜 슬픔에 잠긴 듯 절망한 듯 앞에서 기차 엔진이 깊은 기적소리를 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한 말은 그녀의 마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이었고 그녀의 이성이 두려워하는 말이었다’는 톨스토이의 문장 앞에서 모든 문학하는 이들이 무릎을 꿇고 톨스토이를 경배해야 할 뿐이라는 것만 말하고 싶다.
 
 그 후 키티는 오랜 방황의 시간을 갖는다. 브론스키를 잃은 상처가 너무 컸던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자기를 변치 않고 사랑하는 시골의 젊은 귀족인 레빈의 청혼을 받아 들인다. 그날 레빈은 너무 기뻐 뜬 눈으로 밤을 새운다. 날이 밝으면 키티의 집으로 가 키티 부모에게 공식적으로 청혼을 하려고 할 작정이었다. 톨스토이는 젊은이의 사랑의 기쁨을 어느 작품보다 가장 극적으로 묘사한다.
 
 “레빈은 그날 밤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보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이틀 동안 잠도 자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옷도 입지 않고 찬바람을 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도 미소를 지었다. 하인들에게도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행복감이 그를 감쌌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세상이 바로 천국이 되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사랑은 영원성과 신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다. 하늘의 별도 따다 바칠 수 있고, 생명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다. 사랑에 빠지면 신이 된다. 신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았는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신과 같이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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